-이게 왠 떡이지?
칠레에 도착해서 얼마 되지 않아 한국의 모 법대교수님으로부터 이메일이 왔다. 칠레水法을 번역할 수 있겠냐는 내용이었다. 칠레의 공공기관 사이트에는 영어버전이 없고 미국 대학들의 공식번역료를 알아보니 터무니없이 비싸다고 하셨다. 그 무렵에 몇 군데 지방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하긴 했으나 당장 1, 2월 방학 생활비가 막막하던 차에 옳다구나 하겠노라고 답을 했다. 답을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번역료의 반이 입금되었다. pay도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이게 왠 떡이지?
-공짜는 없다
번역을 시작하고 아차 싶었다. 너무 어려웠다. 우리나라 법전도 읽으면 알까 말까 할 것을 남의 나라 말로 보려니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칠레친구들에게 물어봐도 "일반인"들이 그런걸 어떻게 아냐고들 했다.
-물의 정의
첫 구절부터 난감했다. '물'의 정의. 사전을 찾으면 전부 호수, 늪, 늪지, 연못이 반복되는데 스페인어로는 한도 끝도 없이 표현이 많았다. 문장 구성도 일반 문장과는 달랐고... 받은 돈 물릴 수도 없고, 한숨만 나왔다.
반 정도 하다보니 반복되는 용어가 보여 따로 정리를 해봤다. 친구가 친구의 친구의 친구의... 변호사를 소개해줘서 내 사정을 알고 무료로 메신저 상담을 해줬다. 법전에 쓰이는 문장이 일반 문장과는 무엇이 다른지에 대해서 알고 나니 조금 수월해졌다.
한국에서 교수님과 조교가 와서 교수님의 설명까지 듣고 나니 처음처럼 법전까막눈 면하는 티는 낼 수 있게 되었다. 칠레 몇몇 군데 댐과 강, 호수 등 '물' 구경을 하고 나니 자연환경상 왜 그렇게 '물'의 정의가 복잡한지도 알게 되었다. 칠레사람들이 법을 대하는 태도를 알고 나니 다른 일과 연결시켜 이해하기도 아주 약간은 편해졌다.
이후에는 다시는 번역본을 들춰보지 않았다. 나한테 너무 부끄러울걸 잘 아니까. 그런데 그 어설프고 얄팍한 지식으로 어디 여행이라도 가면 저 연못 주인은 누구일까, 저 강 주인은 어디서 갈라질까, 혼자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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