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September 16, 2011

못난이의 도전 4


-자선파티
오랫만에 영어모임에 갔더니 South Africa 아줌마가 자선파티에 오지 않겠냐고 했다. 칠레 산티아고에는 영어권 사람들을 위한 영어라디오방송이 하나 있는데 라디오 DJ가 사회를 보고 기부금도 만 페소 (우리돈 2만원 정도) 라고 하기에 가겠노라고 했다. 아줌마는 파티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만든 모자"를 쓰고 와야 한다고 했다. 잘 만든 모자에는 상품도 있다고 했다. 뭐 별거 있겠어, 그냥 cap에 색색가지 리본이나 달고 갈까? 아니면 맥주 깡통? 궁리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메일로 초청장을 받아 보니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초청장에는 전년도 모자 수상자의 사진이 있었는데 이건 거의 예술이었다. 다른 모자 사진들도 보니 어찌나 재밌고 창의적인 모자들이 많던지 자칫 cap에 리본 달고 갔다가는 망신만 당할 것 같았다.

-우연한 선물
그 무렵 아는 분 내외가 저녁 초대를 하셨다. 시내에서 파티용품전문점을 하시는 분들이었다. 마침 주말에 "자기가 만든 모자" 파티에 가야 한다고 하니 사모님께서 가게에서 팔다 남은 리본, 끈 등 여러 가지를 챙겨주셨다.  오밤중에 거울을 보고 커다란 망을 이리 둘러 보고 저리 둘러 보고 혼자 놀기를 시작하다 얼추 중세시대 풍 모자를 만들었다.

-내가 만든 모자
파티 장소에 도착하니 모자를 쓰고 입장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입장하자마자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쉬가 터졌다. 동양인은 나 혼자였고 그룹으로 온 사람들은 테이블 하나씩을 차지하고 먹을 것도 준비해온 게 보였다. 나처럼 개별적으로 온 사람들만 모아 놓은 제일 뒤 테이블에 '내가 만든 모자"를 쓰고 멀뚱멀뚱 앉아 있었다.

정말 재미있는 자선파티였다. 산티아고 영어라디오방송 DJ의 사회로 게임, 경매 등이 이어졌다. 내 옆자리에는 전직 칠레주재 남아프리카 대사 내외가 앉았다. 직접 만들어 온 스콘도 너무 맛있었다. 혼자 간 동양인만 아니라면 완벽하게 재미있는 파티였다.

-Table Number 14!
행사가 끝날 무렵이 되자 사회자가 그 동안 행사 주최자들이 모자 심사를 했노라고 했다. 내 옆에 앉아 있던 전직 대사 사모님이 "아마 네 모자가 1등일거야. 이렇게 특이한 모자는 없으니까."라고 했다. 어느 미국 할아버지의 모자가 3등, 땡땡이 무늬 천으로 만든 바이킹 모자를 쓴 어떤 아저씨가 2등을 했다. 사회자가 올해의 1등은 (두구두구두구두구...) 하더니 Table Number 14!하고 외쳤고 사람들이 일제히 우리 테이블을 쳐다봤다.

-초콜렛 500g
우리 테이블이 제일 뒤에 있었던 터라 상 받으러 앞으로 걸어 나가는 길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쉬가 터지고 좋기도 하고 챙피하고 쑥스럽기도 하고  어쩔 줄 모르겠는 기분이었다. 이 날 받은 1등 상품은 칠레 유명 초콜렛 500그램 들이 한 상자!

상품으로 받은 초콜렛을 학교에 가지고 가서 내가 모자대회에서 1등한 상품이라고 비서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다음해 초청장에는 전년도 1등 수상자인 내 사진이 실렸다. 그러나 또한번 유일한 동양인이 되기는 좀 머쓱하고 같이 갈 사람도 마땅치 않아서 가지 않았다. 

-재미있는 자선파티
이후에 모자파티에 대해 얘기하면서 나는 그게 자선파티였다는 걸 거의 잊어버리고 지냈다는 걸 깨달았다. 봉사도 재미있게, 티나지 않는 자선파티. 정말 멋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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