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 배고파요.
많지는 않아도 한국에서 교환학생들이 오면 가끔 우리집에 불러 밥을 먹인다. 고생 모르고 자란 요즘 아이들인지라 처음에는 '김치는 없어요' 하다가, 길에서 사 먹을 것도 참으로 마땅치 않은 칠레살이 한 달만 지나면 '아무 거나 주세요'가 된다. 아이들은 칠레에서 내가 가장 자주 만나는 한국사람들이고 아이들 밥 먹일 때 아니면 나는 칠레에서 우리말을 할 시간이 거의 없다.
나는 그렇게 착하기만 한 선생님은 아니다. 밥 먹고 나면 설겆이도 시키고, 오늘 삼겹살 파티 하니 상추랑 후식 사와라 하기도 한다. (재밌는 드라마나 영화 다운받아오라고 시키기도 한다) 나는 그것도 교육이라고 꿋꿋하게 주장한다.
-교수님, 저희 지금 갑니다.
KB, YJ, YI, H는 아예 우리집에 router를 사다 놓았다. 그리고 계란 한 판, 바나나, super 8 (칠레사람들이 흔하게 먹는 초코바)는 상시 준비. "교수님, 저희 지금 갑니다"하고 전화를 하면 나는 밥만 앉히면 되었다. (가끔은 국도 끓여놓고) 그러면 알아서 밥 먹고 설겆이 하고 공부하다 가고들 했다. 그 해엔 유달리 학회 발표가 많았는데, 파릇파릇한 애들이 옆에서 공부를 하니 나도 그 기운을 받았는지 애들이 밤샐 때 나도 밤새워가며 한 학기에 페이퍼 3개를 무사히 쓸 수 있었다. 그 뿐인가, 행정병 출신 KB의 능숙한 컴퓨터 솜씨로 제1회 한국학논문대회 포스터가 탄생하기도 했다.
-인생은 아름다워
이제는 다들 졸업을 하고 건실한 사회인들이 되었다. 심지어 칠레에 출장도 온다. 그러나 출장 차 칠레에 오면 자유시간도 없고 일정이 빠듯해서 제대로 얼굴도 보지 못한다. 출장 왔다고 찾아온 양복 입은 H를 보니 어찌나 신기하던지. "교수님 저 회식 마치고 술에 좀 취했지만 꼭 뵙고 싶어요. 내일 바로 귀국합니다"하고는 오밤중에 장미꽃을 사들고 왔다. 도저히 개인시간을 내기가 어렵다던 KB는 "교수님 안주무시면 꼭 찾아뵙고 싶습니다" 하며 와서는 나 주려고 챙겨왔다며 아이폰을 건네주었다. "이거 못 드리고 갈까봐 걱정했어요." 한다.
아이들은 계란 후라이에 밥 비벼 먹고 내가 건네준 김홍도, 신윤복 그림 이리저리 조합해가며 자기들이 만든 제1회 한국학논문대회 포스터를 아직도 기억했다. 올해로 그 대회가 제5회를 맞이했고, 이제는 디자이너가 포스터를 만들어주고, 수상작들을 모아 책으로 낼 준비를 하고 있다니 하니 나보다도 더 기뻐했다.
-Thank God
나는 내가 누군가를 불러 밥을 해먹일 수 있다는게 무한히 감사하다. 내가 칠레에서 굶어죽지 않고 살아남아 누군가와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는 함께 한 시간을 기억해 준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이다.
잘 먹고 잘 살기 4
잘 먹고 잘 살기 2
1 comment:
선생님 마음이 보여서 좋은 글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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