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때의 일이다. 중급반에 다니던 일본학생의 일기를 검사하다보니 "어젯밤에 양념치킨을 먹었어요. 감동했어요."라는 구절이 눈에 띄었다. 일본학생들이 "감동"이라는 말을 자주 쓰기에 일본어에서 "감동"이라는 한자의 쓰임이 우리말과는 다른가보다 했지만, 양념치킨을 먹고 감동이라... "양념치킨을 먹고 감동했어요 보다는 다른 말을 생각해보세요"라고 표시해주었다. 다음날 그 학생은 이런 일기를 썼다. "양념 치킨을 먹고 흥분했어요." 그 학생이 생각하는 '기분이 좋다'가 아마도 사전 정의 1번 감동, 2번은 흥분이었던 모양이다.
나는 '감동'과 '흥분'에 대해 생각하며 내가 하는 영어와 스페인어도 이와 비슷한 모양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사전에서 찾은 단어로 문법에 맞게 쓴 문장은 문법적으로는 옳을지 몰라도 '말투'와 '문장의 모양새'가 주는 느낌까지 완벽하게 터득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칠레에서 사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스페인어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멋모르고 말하고 쓸 때에는 겁이라도 없었거늘 어중간하게 아니 더 조심스럽기만 하다. 스페인어로 쓴 페이퍼를 고쳐주는 칠레 친구들은 전에는 문법만 맞으면 대충 봐주더니 요새는 말그대로 가차없이 빨간펜을 날린다. 외국인이 어쩜 이렇게 스페인어를 잘 하냐던 감탄은 초기 시절 얘기다. 요새는 아직도 그걸 모르냐고 야단 맞기 일쑤다. 페이퍼를 써야 한다거나 간단한 인사말을 해야 한다거나 할 때에는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 혼자 하지 말고"라고 교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걸 각인시켜준다. 교수회의라도 하고 난 날엔 기가 죽고 화가 난다. 친구들은 이 단어 보다는 저 단어가 더 고급스럽고 (내가 보기엔 똑같구먼) 이런 표현을 쓰면 싼티가 나고 (그거나 그거나) 이 문장은 이런 식으로 써야지 이게 무슨 말이냐 (왜 못 알아 듣냐고!).. 나는 궁시렁 궁시렁 거리면서도 친구들의 빨간펜이 너무나 고맙다.
한동안 한국어와 어줍잖은 영어로 페이퍼를 쓰느라 교정 봐달라는 부탁을 안했더니 친구가 "너 요새 공부 안하니? 아니면 내가 교정 봐준게 맘에 안들어?" 라고 메일을 보냈다. 뜨끔뜨끔. 그러지 않아도 이번에는 스페인어로 페이퍼를 써야 할 차례다. 절대로 '흥분'하지 말고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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