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September 10, 2011

이웃집 남자 2

SIEMENS 상표를 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그"를 만난 건 칠레 남부에 있는 Torres del Paine 국립공원에서 트레킹을 하던 중이었다. 칠레에 잠시 연수 차 와 있던 D와 E와 나는 맘이 잘 맞아 자주 어울리곤 했는데 어느날 죽이 맞아 가자! 를 결정했다.

우리는 정말 한국적인, 너무나 한국적인 살인적인 스케쥴을 감행했다. Torres del Paine 국립공원을 돌아보는 방법은 일명 W봉이라고 불리우는 세 개의 봉우리를 하나하나 점령!하는 방법과 버스나 차 등 교통수단을 이용해 W 봉 주위를 빙 돌아보는 방법이 있는데, 우리는 세 개의 봉우리 중 마지막 빙하를 제외한 두 개의 봉우리 점령작전을 짰다.

아침 7시 기상, 8시 출발, 지도에 나와 있는 대로 4시간 내 고지 점령, 다시 4시간 내에 내려와 배를 타고 이동, 저녁을 먹고 취침(이라기 보다는 기절), 다시 아침 7시 기상, 8시 출발, 다시 4시간 내 고지 점령, 4시간 내 하강하여 배를 타고 돌아감.. 이 일정대로 움직여야 우리는 산티아고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무사히 탈 수 있었다.

트레킹을 시작하고 난 그제서야 아.... 이 곳은 이렇게 급한 마음으로 보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미친듯이 시간에 맞춰 움직이는, 게다가 제대로 트레킹 준비조차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은 우리 뿐이었다. 유럽사람들은 모든 장비를 갖추고 중간중간 쉬어가면서 조금 더 시간이 걸려도 여유있는, 진짜 여행을 하고 있었다. 숨을 헐떡이면서도 정신없이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우리 뿐이었다. 여행을 마치면 곧 한국에 돌아가야 할 D와 E는 얼른 보고 싶어 마음이 급했지만 이틀째가 되자 나는 다리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이틀째 오를 봉우리로 가는 길은 평평한 돌길이었다. 길이 하도 평평해서 봉우리는 바로 옆에 보이는데 가도가도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전날의 피로와 "다음에 또 와야지" 하는 풀어진 마음이 얽히면서 다리에 쥐가 났다. 내 속도가 자꾸 느려지면서 D와 E의 불편한 표정도 읽혔다. 시간이 지체되면 배를 놓치고 그러면 비행기도 놓치고... 미안한 마음과 아픈 다리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 나는 지금부터 천천히 내려가고 있을테니 올라갔다 오라고 했다. 절뚝절뚝 하는 꼴이었으니 그때부터 내려가기 시작해도 이들은 날 금새 따라올 판이었다.

앉으면 일어날 수가 없어서 다리가 아파도 그냥 걸어내려갈 수 밖에 없었다. 엉금엉금 내려가던 중 "그"를 만났다. 우리와 같이 출발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사람이었다. 일행은 어디 가고 혼자 내려가냐길래 몸이 안좋아서 먼저 내려가는 길이라고 했다.

우리가 올라갈 때 가장 난관이었던 그야말로 돌 밖에 없는 길 앞에 그나마 쉴 만한 공간이 있었다. 거기서부터는 바위 투성이인데 어떻게 내려가나 앞이 막막해서 바위에 앉아 땅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영화처럼 누군가 앞에 멈춰섰다. 고개를 들어보니 "그"였다. 올라가다가 그냥 내려왔다고 했다.

"넌 일본사람이니?" "아니, 한국. 너는?"
"난 독일에서 왔어. 어쩌구 저쩌구 어쩌구 저쩌구.... " 무언가 말을 하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기운이 하나도 없는데 독일식 영어를 알아 듣고 작문해가며 말을 하는 것도 너무 힘이 들었다. 전에 SIEMENS에서 일할 때 아시아에 출장을 자주 갔었다고도 하고 몇년 전에 이 곳에 온 적이 있는데 그때는 단체 관광이라 버스를 타고 주위만 둘러보고 가서 W 봉을 점령해보려고 다시 왔다고 했다.

나는 고개만 숙이고 있고 "그"는 혼자 얘기만 하다가 내려가야겠다고 했다. 그제서야 "나 좀 데리고 내려가달라"고 했다. 몇 시에 배를 타야 하는데 나 때문에 늦어질까봐 미리 내려온건데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안되고 어느어느 지점까지만 내려가서 기다리기로 했으니 거기까지만 가게 도와달라고 했다.

이상하게 마음이 편했다. 그리고 많이 놀랐다. 난 누구를 쉽게 좋아하는 성격이 못된다. 그리고 내 인생에 다시 누구를 좋아한다거나 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건 다 남의 일이었다. 너무 힘들어서 그런가보다고 돌려버렸다. 게다가 내 꼴이 말이 아니었으므로 "그"가 나한테 관심이나 있겠나 싶었다.

"그"는 몇발짝 앞서 걷다가도 내가 비틀거리면 다가와 손을 내밀어 주었다. 내가 그리워하는게 이런거구나 싶어 가슴이 철렁했다. 더 말이 안나왔다.  "넌 언제 한국에 가"냐길래 "저 친구들은 다음 주에 가는데 난 여기 살아"하자 갑자기 "그"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다. (내가 어디에서 일한다는 말을 그때 했어야 했나보다 싶다.)

바위구역을 다 지나 친구들과 만나기로 한 지점에 이르렀다. 거기서 무언가 한참이나 얘기를 했던 것 같다. "그"가 지도를 들고 내 옆에 왔는데 너무 떨려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지난 번 루트는 이러이러했고 이번 루트는 이러이러하고.. 그러다 과자를 먹으라고 주기도 하고.. 그러다 또 얘기도 하고.. 내 대답은 아, 응, 이 다고.. 뭐 그랬다. 남미 여행을 하고 싶어 몇 년 전에는 한 달 휴가를 받아 스페인에 가서 스페인어를 배웠고, 어쩌고 저쩌고, 지금은 SIEMENS에서 분리독립한 회사에서 일한다고 했는데 독일식 회사 이름을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거기서부터는 갈 방향이 달랐다. 나는 친구들이 오면 아래로 내려가야 하고 "그"는 반대 방향으로 가야 했다. 그제서야 서로 이름도 묻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베낭을 매고 몇발짝 걸었을 때에서야 나는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내가 바위구역 앞에서 거의 울며 기다릴 거라 예상했던 D와 E는 내가 보이지 않자 무슨 일이 난 줄 알고 사색이 되어 달려왔다. (그런데 그들에 따르면 내가 발그스레하게 상기되어 있더라나) 어떻게 거기를 혼자 내려왔냐길래 아까 우리가 오가며 만났던 사람이 도와주었다고 하자 갑자기 D가 나를 혼내기 시작했다.

D에 따르면, 같은 남자의 눈과 직감으로 "그"는 처음부터 나한테 관심이 있었다고 했다. "내 꼴을 봐"라고 항변하자, 몇년 전에 왔던 곳에 봉우리 점령하러 다시 왔던 사람이 올라가던 길을 다시 내려왔지 않냐고 더 야단을 쳤다. "그"가 뭐라고 묻더냐, 교수님은 뭐라고 답했냐, 거봐라 그렇게 짧게 대답하면 어쩌냐.. 난 어린 D한테서 유치원생같이 야단을 맞았다. 옆에 있던 E는 그 사람 너무 괜찮던데 하며 더 속을 긁었다. 그 사람을 그냥 보냈냐길래 연락처도 안묻던데? 했더니 "아니 그 따위로 대답을 하는데 뭐하게 묻겠냐"고 D와 E가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산티아고에 돌아와서 D와 E가 한국에 돌아갈 때까지 둘은 매일같이 나를 놀렸다. 매일 공항에 나가서 Rolf를 찾아보라는 둥, 다음부터는 한국에 갈 때 꼭 독일을 경유하라는 둥... ㅠㅠㅠ

칠레에서 친하게 지내던 미국친구에게 skype으로 전화를 걸고 내 억울한 마음을 호소했더니만 "잤어?"한다. "야, 산에서 잠깐 만난 사람이랑 뭘 자" "얘는, 걔가 지네 나라 돌아가려면 어차피 산티아고에 와야 하잖아" "야, 그래서 뭘 어쩌라고" "답답하기는. 정말 좋으면 지가 칠레로 오겠지." "걔가 칠레에 와서 뭐해" "아 거 참, 유럽애가 스페인어까지 하는데 지 밥벌이 하나 못찾겠니?"

누군가는 나더러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이랑 뭘 어쩌겠냐고, 잘했다고 해주면 위안이 될 것 같았다. 맞아, 엄마라면 외국남자랑 뭘 어쩔거냐고, 여행지에서 만난 놈이 어떤 놈인지 알고 함부로 만나냐며 잘했다고 해주실 것 같았다. 그 다음 달 한국에 갔을 때 "엄마, 내가 재밌는 얘기 해드릴게" 하며 말씀을 드렸다. 가만히 들으시기만 하시던 어머니는 조용히 말씀하셨다.  "그래서, 연락처도 안묻고 그냥 보냈니?"

이웃집 남자 3
이웃집 남자 1

3 comments:

soonjoo lee said...

아.. 아쉽습니다.^^

Anonymous said...

다시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조차 안하려고 하죠^*

Anonymous said...

인연이라면 어디서고 다시 만날 거라고 했다가 (칠레)친구들에게 구박만 잔뜩 받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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