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September 14, 2011

못난이의 도전 3

- 달콤한 유혹
3년간 일본에 교환교수로 가신 적이 있는 노교수님 M이 같이 프로젝트를 해보자고 제안하셨다. 여자분이고 종종 당신 집에 초대해서 칠레 문화도 가르쳐주시는 분인데다 매우 흥미로운 프로젝트였기에 흔쾌히 허락했다. 새로운 과목을 개설하는 프로젝트였는데, 세계화에 걸맞는 interdisciplinary한 주제를 영어로 강의하는 것이었다. 일본에서 일해 본 경험이 있는 칠레 교수와 칠레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 교수가 강의하는 Intercultural Communication between Asia and Latin America, 완벽한 프로젝트였다.

- 유혹의 함정
프로젝트를 땄다. 첫 학기는 준비 기간, 두번째 학기에 실제로 수업을 개설해 강의하고 보고서를 제출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수업실러부스를 준비하며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했다. 아침 10시에 연구실에서 모이면 한 시간 정도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고, 잠시 후 당신이 좋아하는 샐러드와 과일을 같이! 사러 가고, 일 얘기를 아주 약간 하다가 점심을 먹고 다시 커피를 마시고... 그렇게 하루 종일 같이 일하는게 그 분이 생각하는 "동양식 협력"이었다. 각자 집에서 준비한 프로그램을 이메일로 교환하고 모여서 수정하는게 어떻겠냐고 하자 "NO!, 그건 협력이 아니야."

-꿈꾸는 자의 자유
M 교수님은 아디이어가 넘치는 분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착륙을 못한다는 것. 하루는 중동과 구소련 지역까지 다 포괄하는 의욕 넘치는 실러부스를 제안하길래, 난 한/중/일에서 멈추겠다, 중동과 -탄, -탄 국가들은 내가 건드릴 수 있는 범위가 아니다라고 했다. "좋아, 그럼 인도까지만 넣자"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저녁 무렵이 되면 "오.. 난 이 실러부스가 너무 맘에 들어. 내가 꽃이 된 것 같아." 했다가 다음 날이 되면 "다 고치자"를 몇 주를 반복했다. 16주 수업이니 각자 8주씩 준비하자고 하니 "우리는 팀이니까 매 수업 시간을 같이 들어가야 한다"는게 그 분 주장이었다. 그 분의 그런 성격 때문에 칠레교수들이 같이 일하기를 꺼려한다는걸 안 건 나중 일이었다.

-NO
우여 곡절 끝에 실러부스를 준비하고 수업이 시작되었다. 한 시간은 M교수님이, 한 시간은 내가 하기로 했는데, 매 번 지난 번에 자기가 할 얘기를 다 못했으니 잠깐만 하면서 수업의 반 이상을 채가기가 일쑤였다. 겨우 내 차례가 되어 수업을 할라치면 내가 하는 말마다 학생들 앞에서 NO 라고 소리쳤다. 학생들 앞에서 교수 둘이 서로 싸우는 모습을 보일 수도 없고 난감했다. 수업 조교는 내 연구프로젝트 조교를 하던 N이었는데, 하루는 N이 M 교수님이 내 모든 프로젝트에 대해 지나친 관심을 보인다고 걱정했다. 오전에 수업을 마치면 꼭 같이 점심을 먹어야 하고 수업에 대해 review해야 한다는 주장도 굽히지 않았다. 학기가 시작하고 두 달 이상 나는 수업 전날이면 잠이 잘 오지 않고 친구들을 만나면 "어제는 M이 말이야"하고 얘기를 시작하니 나중에는 친구들도 나를 보면 "어제는 그 할망구가 뭐라고 하던?" 할 정도였다.

-이건 아니다
M 교수님이 학회 참석차 잠시 자리를 비운 일주일 동안 처음으로 수업 같은 수업을 할 수 있었다. 학생들이 발표하기로 한 case study에도 진척이 있었다. 그러나 M 교수는 돌아오자마자 "네가 뭔데 네 맘대로..."로 시작하여 나를 학생 다루듯 다그치기 시작했다. 조교 N이 "칠레에선 칠레식대로 하세요. 노인을 존중해주는 것만이 다가 아니에요"라고 말할 지경에 이르렀다. 난 이미 제대로 수업도 못하고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어느날 M 교수가 우리 이 테마로 같이 연구프로젝트를 내보자고 하기에 "전 못하겠어요. 그리고 이 수업에서도 빠지겠어요"라고 말했다.

-그러지 마
M 교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너 이게 얼마나 흥미로운 프로젝트인지 알지? 학교에서도 아주 관심있어 한다구. 학장도 도와줄거야." "아, 그럼 당신 혼자 해요. 난 안하겠어요." 그러자 M은 태도를 바꾸어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왜 그러니. 내가 혹시 너한테 뭐 잘못한거라도 있니?" "네, 아주 많죠." 그리고 실러부스와 계획표에 나온 대로 한번도 수업을 한 적이 없다는 점, M 교수 차례에 해당 주제를 벗어난 얘기만 한 점, 매번 내 수업의 반 이상을 앗아간 점, 학생들 앞에서 나를 망신 준 점 등을 줄줄이 읊었다. M 교수는 부들부들 떨었다. "너 어떻게 동양애가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동양에서는 노인을 공경하라고 가르치잖아. 너 아주 못배워먹었구나." 나는 대답했다. "글쎄요, 동양에선 나이 어린 사람이 윗사람을 공경하듯, 윗사람도 아랫사람들에게 모범이 되라고 가르치죠." 그 후 나머지 두 달간 드디어 우리는 실러부스에 맞추어 제대로 된 수업을 할 수 있었고 나도 어느 정도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새옹지마
어려운 한 학기를 "참자, 참자, 이력서에 영어로 강의했다는 흔적이나 남기자, 참자"고 다짐하며 버텼다. 그리고 지금은 M 교수님에게 마음 속으로나마 고마워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마주치면 피하고 싶다. 도가 부족한거다.) M 교수님이 최종보고서를 안 냈다고 본관에서 연락이 왔는데, 세상에, 나를 공동연구원으로 넣었다더니만 알고보니 collaborator로 넣어서 난 보고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워낙 정보에 빠른 M인지라 다문화와 관련된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하자고 날 들들 볶아서 내가 조직해서 이끌고 있는 동아리 Study Group ASIA에 대한 케이스스터디를 발표했는데 이틀간 진행된 수십 개의 발표원고 중 내 페이퍼가 뽑혀서 책에 실렸다. M에게 무시당하기 싫어 한 학기 내내 영어방송을 틀어 놓고 살았고, 문화, intercultural communication과 관련된 책을 파고 들기 시작했다. 주체할 수 없이 넘쳐나던 M의 아이디어를 잘 착륙시켜 꾸미면 몇년 치 프로젝트는 거뜬히 나올 정도다.

-너 자신을 알라
M 교수님과 강의하면서 나 자신이 외국인교수와 communication이 안되면서 내가 어떻게 intercultural communication을 가르칠 수 있는가 수도 없이 자책하고 고뇌했다. 그래서 이후 내 연구의 주된 주제가 intercultural communication, 그리고 비교문화가 되었으니 난 M 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못난이의 도전 4
못난이의 도전 2

3 comments:

Anonymous said...

원래 칠레 사람들이 이래요 아니면 이교수가 지멋대로(?)신거예요..ㅋㅋㅋ완전 피곤하셨겠다..ㅠㅠ그래도 언니 대단하신 것 같아요.. 저같으면 한학기내내 가슴앓이하면서 티도 못내고 말도 못하고 당하다 끝났을 것 같은데...ㅋㅋ언니 쵝오~!ㅋㅋㅋ갑자기 멕시칸애가 떠오르네요..그 친구는 너무 느리고 너무 천하태평이고 수업시간에 늦는건 기본..ㅋㅋ말은 또 어찌나 많은지.. 제가 과제를 좀 한다치면 너는 미쳤다며 배웠으면 됐지 뭘더 그렇게 하려그러냐며 그렇게 저한테 뭐라 그러다 꼭 수업 전날 또는 한시간전에 과제가 너무 많다며 울던 애가 생각나네요..ㅋㅋㅋ왠지 칠레하면 꼭 멕시코에 그 아이가 떠올라요 아...맞다..이 아이가 저보러 같이 칠레가자 했었거든요.. 그래서 그런갑네요..ㅎ칠레사람들은 어때요? 빨리 가서 알아보고 싶어요~ㅋㅋㅋ

Anonymous said...

칠레애들은 멕시코애들이랑 또 달라서.....

Anonymous said...

고생이 많으셨네요~ 그래도 얻은게 있어서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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