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September 20, 2011

일주일 그리고 또 일주일 2

(칠레)친구 A의 생일파티였다. A, CG, X, C, 그리고 나, 우리는 요가교실에서 만나 더이상 요가는 하지 않고 1년에 5번 서로의 생일에 초대하는 친구가 되었다. 7살의 연하의 남편과 깨가 쏟아지게 살고 있는 A는 솔로인 X와 나를 시집을 못보내 안달하는 친구다.

-X의 "그"
그런데 A의 생일날 X가 전화기를 붙들고 안절부절했다. 계속 날아드는 문자메시지와 전화에 우리도 신경이 쓰였다. 그러지 말고 그냥 오라고 해라, 모두의 성화에 드디어 늦게나마 그녀의 남친이 나타났다. A는 원정아 너 이제 어쩔거냐, 반성해라, 이제 너만 남았다, 잔소리를 시작했다.

-정신 사나운 "그"
A는 그래도 친구 남친이 온다는데 이대로는 안된다며 따로 상을 차리고 수선을 떨었다. 그런데 X의 "그"는 들어서자마자 축구얘기, 자기 전 부인얘기(!), 자기 아들 얘기를 끝도 없이 늘어놓았다. X 얼굴도 어두워지고 우리도 어색했다.

-애꿎은 공격
A와 그녀의 남편이 CG 커플과 아이를 데리고 온 C를 데려다 준다며 잠시 나갔다. 나는 X와 방향이 같아 X의 남친이 늦은 저녁을 먹는 동안 기다려야 했기에 집에는 우리 셋이 남았다. 모두가 나가자 갑자기 X의 남친이 나에게 질문공세를 퍼부었다. "넌 왜 칠레에 살아? 왜 칠레에 왔어? 언제 왔어? 와서 뭐해?" 낮선 자리에 갈 때마다 둘러쌓여 이런 경우를 당한 경험이 한 두번이 아니라 이제는 적당히 넘기기도 하지만, 그의 태도는 사뭇 공격적이었다. "내가 외국계 회사에서 일하는데, 난 걔들이 왜 남의 나라에 와서 일하는지 이해가 안되더라. 지들끼리 모여서 칠레 흉이나 보고 말이야. ..." X가 "원정이는 여기서 잘 지내. 칠레 흉 안봐. (ㅋㅋ 가끔 본다) 밥이나 먹어" 해도 그는 굽히지 않았다. "나는 말이야, 각자 자기 나라에서 사는게 최고라고 생각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면 나도 다른 짓궂은 칠레사람들에게 응대하듯 하고 싶었지만 그는 친구의 남친이었다. 더 대꾸하기 싫어 소파에서 잠이 든 척 했다. "어라, 자나봐? 내가 얘기하는데도 자네?" 잠시 눈을 뜨면 어느새 알아보고 계속 남의 나라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공격을 했다


잠시 후 돌아온 A 내외가 돌아와서 어색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나는 X의 남친의 차를 타고 집으로 왔다. 운전을 하면서도 그는 축구얘기, 자기 전 부인얘기(!), 자기 아들 얘기, 그리고 "남의 나라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멈추지 않았다. 후에 전후사정을 들은 A는 아니 걔는 어디서 그런 놈을 골라왔냐고 분개했다.

얼마 후 내 생일에 X는 남친을 데리고 오지 않았다. "말이 좀 많아서 말이야"라는 그녀의 말에 모두가 웃었다. 그리고 그 다음 C 생일에 드디어 X가 "끝냈어. 너무 시끄러워서"라고 했을 때 다들 박장대소를 했다.

-우리나라 남의 나라
이제는 방학에 한국에 다녀와도 칠레가 낯설지 않고 (오히려 한국이 낯설 때가 더 많고) 칠레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집에 왔다'는 안도감마저 느낀다. 그러나 왜 남의 나라에 사냐는 공격을 받을 때 여기가 왜 남의 나라냐고 말할 수 없고, 대한민국여권을 칠레여권으로 바꿀 맘이 없는 걸 보면 여기가 우리나라가 아닌건 아닌거다.

일주일 그리고 또 일주일 3
일주일 그리고 또 일주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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