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October 4, 2011

이웃집 남자 13

San Pedro de Atacama 사막에 다녀온 후 독일할아버지가 가끔 전화를 하셨다.
(see 이웃집 남자 4) 맛있는 거 사줄테니 나올래 서너번 연락을 하시는데, 도대체 이 노인네가... 하는 생각도 들고 아주 반갑기만 한 것은 아니어서 바쁘다고 둘러대고 나가지 않았다.

하루는 전화를 하시더니 클래식음악콘서트를 가자고 하시는데, 이건 거절하기 쉽지 않은, 나도 꼭 가보고 싶은 콘서트였다. 사막에서 서로 청바지에 먼지에 찌든 모습만 보고 몇달 만에 만난 할아버지와 나는 하마터면 극장 앞에서 서로 못알아보고 지나칠 뻔 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1월에 사막에서 만난 이후 몇달 사이에 많이 노쇠하신게 보였다. 사막여행도 거뜬하게 하시던 분이 걸음도 겨우겨우 걷고 계셨다. 당신은 노인할인을 받아 이런 좋은 콘서트 표를 싸게 살 수 있다는 얘기, 페루 살 때 얘기, 해외에 오래 살다 고국 독일에 돌아가보니 자기 나라에서 이방인이 되는 느낌이 이런 거더라는 얘기 (이건 남 얘기 같지가 않았고..), 칠레에 사는 얘기, 자식들 얘기 등등.... 아무 생각없이 내가 언젠가 여행에서 독일남자를 만났다는 얘기(see 이웃집 남자 2)를 해드리니 당신이 찾아봐주겠다는 너스레까지.. 유머감각은 그대로셨다.

칠레남자와 결혼한 (미국)친구 M에게 할아버지 얘기를 했더니 "얘, 그 노인네가 너랑 뭐 어째보겠다기 보다는 너무 외로우신거 아니겠니? 우리 시어머니를 소개해드려볼까? 혼자 심심해 하시는데 말야. 일단 우리 international party 한번 해보자." 우리는 주위에 있는 외국친구들 몇 명을 소집해 우리집에서 international portlock party를 하기로 했다.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그런데 대뜸 "난 당신이 누군지 모르는데요" 하신다. 어? 기분이 이상해서 얼마 뒤 다시 전화를 했다. "내가 너를 왜 몰라" 하신다. "그게... 내가 치매기가 좀 있어서 가끔 헛소리를 할 때가 있단다. 파티 좋지. 꼭 가고 싶다. 단, 그 날 내 정신이 멀쩡하면 가는 거고 아니면 못가는 거니까 이메일도 한 통 보내주면 좋겠구나."

할아버지는 무사히! 파티에 오셨다. 할아버지는 음식준비에서 특별예외시니 와인만 한 병 사오시면 된다고 했는데 아들이 그러는거 아니라고 했는데 직접 만들지 않고 사와서 미안하다시며 이건 Unimarc (칠레 슈퍼마켓 중 하나) 표 tortilla다 하셔서 모두들 웃었다.

한국, 미국, 일본, 독일, 이태리, 국적 다른 친구들이 국적 다른 음식을 먹으며 우리는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이유/목적은 달라도 다른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피부색이 달라도 서로 통하는 무엇인가가 있다.

할아버지는 당신 아들의 성적정체성을 알고 난 후 받아들이기까지 괴로웠던 심정을 너무 담담하게 얘기하셨다. 그러나 그 누구도 "어머 어떻게" 따위의 말은 하지 않았다. 할아버지와 이태리교수의 고전문학과 음악에 대한 대화는 나의 무지함을 깨닫게 하는데 차고도 넘치는 것이었다. 민원정, 너 문학박사 맞냐,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바쁘다는 핑계로 international portlock party를 미루고 미루는 사이 할아버지와 연락이 안된다. 어디에 계시든 편안하시길 바랄 뿐이다.

이웃집 남자 14
이웃집 남자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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