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사람들을 보며 종종 (혹은 자주) 느끼게 되는 것이 "덕"의 개념이라는게 없는게 아닐까 하는거다. 빈말로라도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듣는 일은 아주 드물다.
제4회 국제한국학세미나 Junior Panel을 준비하며 두어달 이상을 매주 금요일마다 아이들을 불러 먹여가며 트레이닝을 시켰는데, 행사를 무사히 마치고 나자 자기들끼리 축하하느라 바빴다. 8명 중 한 명이 감사하다는 멘트를 내 페북에 남겼다. Junior Panel 참가자 중 내 수업을 듣는 학생 한 명은 시험을 연기해달라고 조르면서 "패널 참가는 우리가 했는데 교수님이 피곤할 일이 뭐가 있어요?"했다. 제4회 국제한국학세미나에서는 2007-2010년 한국학논문대회 수상작들을 모은 책의 출판기념회도 있었는데 12명의 학생 중 그 누구도 책을 내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는 학생은 없었다.
내가 나이가 들었나보다.. 별거 아닌 일이 다 서운하고.. 싶었다. 칠레사람들의 이런 특징을 누구보다 많이 겪었고, 느꼈고, 그래서 그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내 실적을 차근차근 쌓아가면 되는 거라 다짐한게 벌써 여러 해 전일인데, 그래도 가끔은 참 이해하기 힘든게 사실이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라고 뭘 그리 감사한 마음을 지니고 살았나 싶어 웃고 만다. 나를 가르쳐주신 스승들께서 들으시면 콧방귀를 뀌고도 남을 꼴 아닌가. 아이들은 책이 나왔으니 좋은거고 나도 편집자로 실적을 남겼으니 좋은거고, 세미나 조직자는 나이니 세미나가 성공적으로 끝난건 나한테 좋은거다, 딱 거기까지만 생각하면 되는거다.
그런데 행사가 끝나고 한 통의 이메일이 왔다. 논문대회 수상작 저자 중 한 명이다. 논문대회에 참가한 것도 별 뜻 없이 해본거였고, 상을 받고도 별 느낌이 없었고, 책으로 나올 거란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었다며, 그동안 교수님(내)이 해오신 일들이 차근차근 싹을 틔우는게 보인다, 진심이 담긴 내용의 메일이었다.
무척이나 시건방졌던 녀석 중 한 명이었다. 나를 꽤나 못살게 굴던 동료교수의 애제자라 여러(?) 이유로 내 수업을 듣는다는 것을 알고도 어쩔 수 없던 놈이었다. 그 녀석에게 상을 주자고 우기던 것도 그 동료교수였다. 학교에서 마주치면 턱을 쳐들고 반말로 인사를 건네던 놈이다. 그런 녀석에게서 의외의 메일을 받으니 기분이 묘했다. 별것도 아닌 것에 서운하고 좋고.. 나도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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