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 나간지 얼마 되지 않은 (한국)친구 I가 한국방송을 어떻게 보느냐고 물었다.
물론 나도 외국에 살다보니 우리말이 듣고 싶고 말하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인터넷 속도도 내 시간도, 보고 싶은 것 챙겨볼 겨를을 허락하지 않는다.
우선 나는 한국의 모 방송국이 무료로 제공하는 프로그램 중 보고 싶은 것을 골라서 듣는다(?) 방송을 집중해서 볼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다보니 대충 틀어놓고 다른 일을 한다. 그래서 몇년 전 왔던 한국학생들이 우리집에서는 라디오드라마를 듣는다고 해서 웃었던 기억이 난다. 인터넷이 느린데 제대로 방송이 나오냐고? 물론 아니다. 뭐 끊겼다 나왔다 하는 동안 청소도 하고 설겆이도 하고 이런저런 일을 하기 때문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수업시간에 사용할만한 다큐멘터리, 드라마, 영화는 한국교환학생들에게 부탁한다. 우리집에 밥 먹으러 올 때에는 드라마/영화가 밥값이라는 농담 반 진담 반 규칙이 있을 정도다. 내가 말하기 전에 "이런 프로 필요하세요?" 라고 물어봐주는 학생은 그야말로 나의 넘치는 사랑을 받는다.
재미있는 드라마는 후배가 다운 받아 주기도 한다. 이런 드라마는 어쩌다 시간이 나면 맘먹고 본다. 그런데 나는 무슨 일이든 한번 시작을 하면 끝을 내야 해서, 한번 보기 시작하면 주말밤을 꼬박새워 드라마 몇십회를 다 끝내기가 일쑤여서, 되도록이면 시작을 잘 안한다. 어느해 크리스마스인가에는 후배 내외와 밥을 먹고 하루 종일 한국 코미디 프로를 본 적도 있다. 어쩌다 한국에 가면, 낮에는 사람들 만나고 밤에는 그동안 보고 싶던 드라마 보느라 날밤을 새서 어머니께 야단 맞기 일쑤다.
한국드라마를 좋아하는 칠레학생들은 어디서 용케도 영어든 스페인어든 자막이 딸린 프로그램을 다운 받아 잘도 본다. 가끔은 학생들이 보라고 해서, 이네들이 왜 이 드라마를 좋아하는지 분석한답시고 본 드라마도 있다.
이제 갓 외국생활을 시작한 I가 그리워할 우리 드라마. 조만간 그도 정작 한국에 사는 사람들보다도 더 꼬박꼬박 한국드라마를 챙겨보겠구나 싶다.
그들의 도전 23
그들의 도전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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