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은 둘: 우리나라와 남의 나라
몇 년 전 한국에서 열리는 학회에 갔더니 미국의 모 대학에 교수로 계시는 한국인 교수님의 사모님께서 내가 칠레에서 왔다고 하니 혀를 끌끌 차시며, "좀 좋은 나라를 가지 그랬어요"하셨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사촌동생들이 방학 동안 브라질에 갔다고 하니 이 얘기를 들으신 작은 아버지께서는 "간 김에 칠레에 가서 원정이 누나도 잠깐 보고 오지 그랬니"라고 하셨다고 하고 이 얘기를 들으신 우리 모친께서는 "그러게나 말이에요" 하셨단다. 어머니께서는 한발 더 나아가 조카가 미국에 간다고 하니 "가까이!!! 사는 고모가 좀 자주 들러봐라"고까지 하셨다.
한국에서 볼 때야 남미는 좋은 나라도 아니고 그저 한 덩어리고 인디오원주민들이 사는 곳으로 생각될테니, 나는 좋은 나라에 못간 사람이고 칠레에서 미국까지 12시간, 브라질이나 멕시코까지도 7-8시간은 족히 걸린다는 것을 수차례 말씀드려도 그저 남미는 남미일 뿐이다. 그리고 어느 선배의 말처럼 세상에는 우리나라와 남의 나라, 이렇게 두 나라만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칠레는 '중남미'가 아니라 '중남미에 있는 한 나라'다.
그뿐인가. 칠레-한국을 오갈 때 주로 LA에서 비행기를 갈아탄다는 생각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칠레와 LA가 같은 시간대일 거라고들 생각한다. 평면 세계지도를 보면 칠레는 LA와 일직선상에 있다. 그러나 둥근 지구본을 보면 남미는 북미에서 약간 엉덩이를 뒤로 뺀 모양을 하고 있어서 실제로는 뉴욕과 같은 시간대에 있다.
한국과 칠레는 시간도 계절도 정반대여서 칠레가 한국보다 12시간이 늦다. 한국에서 제야의 종이 울릴 때 칠레에서는 그믐날 오후가 되니 칠레가 LA 시간대일거라 생각하셨던 어느 교수님께서는 한국이 날마다 17시간 더 빨리 달렸으니 칠레보다 그만큼 더 발전된 나라여야 하지 않겠느냐고 우스개소리를 하셨다.
칠레를 잘 모르는 한국에서는, 그리고 칠레를 얼핏 다녀가신 분들은 "여기 뭐 우리나라 80년대 같구만"하시지만, 칠레는 중남미에서 유일하게 OECD 국가 중 하나이고 백인상류층들의 삶은 우리나라에서 어지간히 산다하는 사람들이 따라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니며, 칠레사람들에게 한국은 일본이나 중국만큼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 아닌, 조금만 더 하면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은 나라다.
한국이 칠레보다 17시간 더 빨리 갔으면 따라잡기엔 힘든 나라일만큼 앞서 있을텐데 12시간 차이여서 그런가 보다고 나도 우스개 소리로 답을 해드렸지만 우리나라가 따라잡기 힘들만큼 칠레보다 앞선 나라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과, 칠레가 '어머 좋은 나라에 사네"라는 소리 듣게 할만큼 발전했으면 하는 마음이 내 마음 하나 속에 같이 있다.
그들의 도전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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