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의 대학생들은
스펙을 쌓느라 동아리 활동을 할 시간이 없거나 스펙에 도움이 될 동아리만을 찾는다는 기사를 보니 마음이 씁쓸했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땐 동아리를 써클이라고 불렀고, 대학시절 나는 "미국문화원 산하"의 한 영어연합써클에 참여했었다. 데모가 창궐하던 시절 "미문화원" 근처를 어슬렁거린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학과 동기들로부터 "개념이 우주선 타고 날아간" 사람 취급을 받았으나, 비싼 등록금을 내고 수업을 거부하다니... 나는 수업은 듣고 데모는 그 후에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실은 써클친구들이 너무 좋아 이념이고 뭐고 별 관심이 없었다.
유학도 어학연수도 귀하던 시절, 우리는 매주 수요일엔 종로 '청자다방'에 모여 영어! 뉴스레터를 만들고, 토요일이면 명동 YMCA 건물에 모여 영어!로 회의를 했다. 매년 겨울방학이면 선배들의 글을 취합해 잡지도 만들었다. 나는 1학년 때는 써클 타이피스트였고 2학년 때는 부회장이었다. 지금도 사람들이 무슨 타이핑이 그렇게 빠르냐고 놀라는데, 이게 다 그 옛날 청자다방에서 1년간 갈고 닦은 솜씨다. 부회장의 임무는 fee! 즉 회비를 아주 악착같이 걷는 거였는데 아마 그 기억으로 지금도 여기저기 협찬을 받으러 다니는 모양이다. 아직 컴퓨터가 나오기 전인 그때, 추운 겨울 타이프라이터!!!를 들고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누구집 카레라이스가 더 맛있나 비교해가며 잡지를 만들던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씩 웃음이 난다. 우리끼리 콩글리쉬면 어떠리, 우리는 참 열심이었고, 그 시절엔 많지 않던 해외에서 살다 온 친구들의 이러저런 억양도 배웠다.
연합써클이라 여러 학교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 있다 보니 축제시즌이 되면 신림동 순대에서 신촌 감자탕, 어디어디 떡볶기.. 등등 우리는 이 학교 저 학교를 누비고 다녔다. 명동에서 모임을 끝내고 싼 생맥주집을 찾아 종로까지 걷는 일도 다반사였지만 마냥 재미있었다. 내가 미문화원 산하 12개 써클의 Speech Contest에 우리 써클 대표로 참가해 3등을 했을 때엔 써클 선후배들 모두 와서 응원해주었다.
대학시절 기억을 떠올려 칠레에서 Study Group ASIA를 만들었고, 그때 다같이 모여 잡지를 만들던 기억을 떠올려 책을 낼 용기도 냈다. 우리끼리 Speech Contest 심사를 한답시고 만든 온갖 규정.. 들을 떠올리며 한국학논문대회도 만들었다. 지금도 써클 친구들을 만나면 마냥 반갑고 좋다. 젊은 날의 호기심과 열정, 사랑과 우정, 경험... 보이지 않는 자산이 아닐까. 요즘 대학생들 전부가 설마 스펙만 쌓느라 그런 것들을 다 잊고 살지는 않으리라 믿는다.
일주일 그리고 또 일주일 93
일주일 그리고 또 일주일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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