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September 1, 2013

못난이의 도전 116

칠레에 와서 처음엔 하숙집에,
이후엔 가구가 갖춰진 오래되고 자그마한 스튜디오에, 그리곤 방이 딸린 아파트로 차례차례 거처를 옮겼다. 스튜디오에 살 때만 해도 곧 한국에 갈 것 같은 마음에 가구가 딸린 곳에 세를 든 것이었고, 너무 낡은 스튜디오에서 지내기가 어려워 아파트로 옮기면서는 있는 돈 탈탈 털어 의자, 침대, 그리고 냉장고만 마련해서 살림살이를 시작했다. 책상은 아는 분 레스토랑이 리모델링을 한다기에 버리는 탁자 하나를 얻어서 사용했다.

그렇게 장만한 칠레살이 첫 살림 중 하나인 냉장고가 고장났다. 몇 년 전부터 냉동실에 성애가 많이 끼더니만 결국 제 구실을 다 못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기사를 불러 고칠까 새로 살까를 고민하던 중 결국 새로 나온 제품이 에너지효율도 더 높다는 의견에 한 표를 주기로 했다.

냉장고를 내보내던(?) 날 생각했다. 스튜디오에 살 땐 미니바 하나로 겨우겨우 버텼다. 아파트로 옮기면서 살림살이를 장만한건 칠레에 계속 살 생각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가구 딸린 아파트 월세는 너무 비싸 이것저것 계산해서 필요한 것만 사들고 가구 없는 아파트로 간 것 뿐이었다. 그래도 미니바가 아닌 냉장고가 부엌에 버티고 있는게 신기하고 좋아서 설레었던 기억이 있다. 임시살이로 장만한 냉장고가 나간건 내 칠레살이도 이제는 더이상 임시살이만은 아니라는 뜻일까? 어쨌든, 그동안 고마웠다, 냉장고!


못난이의 도전 117
못난이의 도전 115

Blog in Spanish Adiós, Sr. Refri

1 comment:

Anonymous said...

아 눈물이 나네요 ..
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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