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February 13, 2013

못난이의 도전 87

몇 년 전, 가까이 지내던 가족이 연수 기간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어 공항에 배웅을 나갔다.
들어가는 모습만 보고 오기가 내내 아쉬워 출입국사무소를 통과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데, 어째 얘기가 길어지는 것 같더니만 다른 사무실로 가는 모습이 보였다. 이유인즉슨, 미성년자의 경우 부모 중 한쪽과 여행을 할 경우에는 다른 부모의 동의서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다는 이유로 칠레출입국사무소에서 출국을 금지시킨 것이었다. "한쪽이 연수를 나와 있는 동안 다른쪽이 가끔 칠레에 다녀간 기록이 있는걸 보니분명 양쪽 부모가 다 있는데 왜 동의서가 없느냐", "아니 정부에서 연수를 나온 사람인데 설마 애를 데리고 납치를 하겠느냐 어디를 가겠느냐", "원칙원칙이다. 동의서를 받아와라". 결국 이 한쪽은 다른쪽이 연락을 받고 서둘러 인터넷/팩스를 동원해 동의서를 보내주어 다음날 칠레를 떠날 수 있었다.

또다른 분은 칠레를 떠나기 얼마 전 칠레 신분증을 잃어버려 출국을 못할 뻔했다. 어차피 곧 떠날텐데 뭐 하고 분실신고를 안했는대 출입국사무소에서 일시체류자가 체류기간이 끝나 칠레를 떠날 경우 신분증을 반납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으니 ... 결국 얼마간의 실랑이 끝에 칠레운전면허증을 반납하고서야 칠레를 떠났다.

가끔 한국분들이 원칙, 원칙, 원칙 타령하는 칠레사람들을 답답해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말이 되든 안되든 일단은 원칙적으로 하는 면이 마음에 들어 칠레에 산다. 나도 못지 않게 답답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내가 얼마나 답답한지에 대해 어머니께서 해주시는 이야기가 있다.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담임선생님께서 "자기 전에 옷을 개켜서 머리 맡에 두고 자요" 하셨다. 나는 선생님 말씀대로 옷을 차곡차곡 개켜 머리맡에 두었다. 어머니께서 발에 치인다고 옷을 발치로 치우시자 내가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 절대로 안된다"며 다시 머리맡으로 옮겼다나...

어쨌든, 답답한 사람이 답답한 나라에서 원칙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으니 그러저러 궁합이 맞기는 맞는 것인가 보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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