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열리는 학회에
참석하는 길에 일을 몇 가지 만들어 한국에도 다녀왔다. 전에도 호주에 가 본 터라 별 생각이 없었는데 산티아고에서 호주의 Perth까지는 산티아고-뉴질랜드 오클랜드 공항-호주 시드니를 거쳐 무려 25시간이나 걸렸다. Perth에서 한국은 말레이시아항공을 타고 Indian Ocean을 건너 쿠알라룸프를 경유했다. 이 루트가 실종 말레이시아항공기와 같은 루트라는 것을 Perth를 떠나기 하루 전날 알았다.
산티아고로 돌아오는 길은 시드니와 오클랜드를 경유하게 되어 있었다. 시드니를 경유하면 좋은 점은 경유지에서 가방을 다시 찾지 않아도 되고 세관을 통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단, 경유시간이 아주 짧다는 것. 시드니 경유시간은 한 시간 반 정도인데 이러저런 문제로 한국에서 한 시간 정도 출발이 늦어졌다. 시드니에 도착할 무렵이 되자 기내방송이 연결편 시간이 촉박한 고객들의 이름을 불렀다. 십여 년 한국을 오가며 기내에서 이름이 불려보기는 이때가 처음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항공사 직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객들의 이름을 확인하기가 무섭게 그는 '달리기' 시작했다. 어찌나 빠른지 숨이 가빠 죽을 지경이었으나 얼굴에 가득 미소를 머금고 "비행기를 놓칠 순 없겠죠? 기운 내세요."라며 달리는 그를 죽어라 따라갈 수 밖에 없었다.
헉헉대며 게이트에 도착하니 거의 마지막 승객들이 탑승하고 있었다. e-ticket을 꺼내려는데 카운터 직원이 "아무 것도 꺼내지 마세요"라며 이미 준비된 내 보딩패스를 내밀었다. "이제 타면 되나요?" "아니요, 당신 짐 상태를 확인해야 해요. 아무데도 가지 마세요." 직원은 무전기로 내 짐이 어디쯤에 있는지를 계속 확인했다. 숨이 턱까지 찬 채로 그녀에게 물었다. "잠깐 화장실에 다녀와도 되나요?"
시드니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여름에서 겨울로 계절이 바뀐 상태라 약간 쌀쌀함을 느꼈지만 한국에서 떠날 때 입은 여름옷 그대로 온 몸이 땀에 젖어 비행기를 타고, 오클랜드 공항에 내려서야 겨우 옷을 갈아 입고 세수를 하고 말그대로 사람꼴이 좀 되었다.
30시간 넘는 여행을 마치고 산티아고에 도착하니 결국 내 짐은 도착하지 않았고, 축 늘어져 집으로 돌아와 쉬고 있자니 몇 시간 후 내 짐이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긴 여행이야 늘 각오하고 하는 거라지만, 나이를 더 먹어 또 '달릴' 일이 생기면 다시 그렇게 빛의 속도로 달릴 수가 있을까? 닥치면 다 하게 될까? 그저 최선을 다해 체력을 관리하고 '달릴' 일은 되도록 없기만을 바랄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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