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학생으로 왔던 Y가 스페인어 자막이 없는 한국영화에 자막을 달아보고 싶다고 했다. 매 학기 Study Group ASIA에서 진행해오던 한국영화제 분위기를 좀 바꿔보고 싶던 차에, 그럼 칠레학생과 짝을 이루어 자막을 달면 그걸로 이번 학기 영화제를 대신하겠노라고 했다. Y는 같은 학기에 일본에서 와 있던 교환학생도 꼬드겨(?) 학생들이 자막을 단 한국/일본 영화제가 개최되었다.
한국/일본 학생+칠레학생들이 짝을 이루어 자막을 달고 마침 디자인을 전공한 학생이 있어 포스터도 학생들로 하여금 직접 만들도록 했다. Study Group ASIA 참여 학생들의 작업임을 알리기 위해 학교 agenda에 아이들의 이름을 올렸다. 아이들은 "이건 너무 친절한 압박이에요... 이름까지 학교 웹에 올라갔으니 잘 해야 하잖아요" 했다.
얘기가 생각보다 커지자 Y는 당황하는 듯 하더니 더욱더 책임감을 가지고 일했다. 일본학생도 이에 질세라 열심이었다. 학교에서도 학생들의 노력을 칭찬해주고 나는 졸지에 학생들을 독려해준 좋은 선생님이 되었다.
Y의 뒤를 이어 온 S는 울며 겨자먹기로 영화번역을 해야 했다. Y는 칠레를 떠나기 전날까지 S를 도와주고 갔고 일본학생은 지난 학기 경험을 살려 두루 챙기는 세심함을 보였다. 이번 학기에도 자막은 아시아학생과 칠레학생이 달고 포스터도 아이들이 만들었다. 중국서 온 학생들이 자기들도 하겠다고 나서서 졸지에 한국/중국/일본 영화제를 모두 할 수 있었다.
영화번역이 제대로 되어 가는지, 자막은 잘 달고 있는지 수시로 확인하고 체크하고, 학생들이 자막을 단다고 여기저기 소문 내고... .. 일본학생은 영화 마지막에 "교수님의 친절한 압박에 감사드립니다"라고 재치있는 문구를 남겨 모두를 웃게 만들었다.
작은 일도 세심하고 친절한 압박이 빠지면 어느 순간 일이 틀어진다는 것을 아이들도 이 다음에는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친절한 압박을 통해 나와 점점 더 나이차이가 벌어지는 여러 나라의 학생들과 일하는 법을 배우는 것, 그것은 나를 향한 즐거운 압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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