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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September 28, 2011

일주일 그리고 또 일주일 3

-아무 생각없이

대학에서 처음 스페인어를 배울 때 외국인회화선생님께서는 첫 시간에 스페인어이름이 적힌 종이를 나눠주시면서 마음에 드는 이름 하나씩을 고르라고 하셨다. 내 성의 이니셜과 같은 M이 들어간 이름 하나를 '아무 생각없이' 골랐는데, 이후에도 외국인회화선생님께서 내 이름을 잊지 않으신 덕에(?) 바꾸고 싶어도 바꾸기가 어렵게 되었다.

칠레에 와서도 사람들이 내 한국이름 부르는걸 어려워해서 간단하게 소개하고 끝내고 싶을 때에는 '아무 생각없이'  그 이름을 사용했다. 그런데 칠레는 서류/문서를 중요시하는 곳이라서 이력서를 제출하거나 할 때에는 공식적인 이름이 아닌 스페인어 이름을 사용하면, '이 서류가 네 서류냐'로 더 복잡하기만 했다.

내 한국이름을 영문으로 표기하면서 보니, 공식 로마자 표기법에 따르면 Wonjeong이 되어야 하는데 여권 만들 때 또 '아무 생각없이' Wonjung으로 써넣어서 바꾸고 싶어도 바꿀 수가 없었다. 여권표기와 동일해야 나중에 문제가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이름을 잘 모르는 칠레사람들은 나를 Won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Wong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Wong Jung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제멋대로다. 한국사람이 성을 앞에 쓴다는 것을 주워들은 사람들은 내 이름과 성을 제멋대로 바꾸어서 Jung Ming Won을 만들기도 한다. 한국사람들이 외국사람들 힘들까봐 성만 사용하거나 이름의 첫 글자만 사용하는 것을 아는 어떤이들은 너는 왜 약자로 쓰지 않냐고 묻기도 한다. 그러나 내 주위의 동료들과 친구들은 정확한 발음이 뭐냐고 확인해가며 이제 모두 나를 Wonjung이라고 부른다.

칠레친구들이 네 이름은 무슨 뜻이냐고 물어 '아름다울 媛'에 '물이름 湞'이라고 말해주니 다들 감탄한다. 너희 부모님은 왜 그런 이름을 지어주셨냐길래 "내가 사주에 물이 부족해서 '물이름 湞'을 넣은거래."하니 C가  "가만, 그럼 왜 '아름다울 媛'을 넣어주신거지? 너 태어났을 때 무지 못생겼었나보다" 하자 F가 "여자애니까 그런 글자도 하나쯤 넣지 않았을까? C, 너 또 Wonjung 놀리니?"해서 다들 웃었다. 그러나 C도 F도, 다른 칠레친구들도 매사에 뜻을 새기는 한국문화가 무척 아름다워보인다고 한다. 이름이 그대로 세례명이라 세례명의 개념이 없는 칠레친구들은 작은 어머니께서 이러이러한 이유로 내 세례명을 Helena라고 지어주셨다고 하면 그 마음이 너무 아름답다고 한다. (칠레)신부님께서는 내 한국이름도, 내 세례명도 다 너무 예쁘다며 꼭 Wonjung Helena를 동시에 불러주신다.

내게 오는 우편물이 가끔은 다른 캠퍼스에 있는 공자학당으로 가기도 하고, 좀 특이하다 싶은 이름의 우편물은 다 내 앞으로 올 때도 있다. 대만무역관에서 국경일 행사 초청장이 왔는데 Wong Jung Ming 여사 앞이다. 그래,  부모님께서 이모저모 다 헤아리셔서 지어주신 이름을 내가 '아무 생각없이' 스페인어이름도 짓고 '아무 생각없이' 영문표기도 하고.. 그래서 받는 벌이다, 했다.

일주일 그리고 또 일주일 4
일주일 그리고 또 일주일 2

6 comments:

sungwook mhin said...

저도 같은 일 많이 겪었어요. 처음엔 한국어 발음이 어렵나? 라는 생각도 하고.... 성이라 부르기도 하고.... 하지만 글자 하나하나에 뜻이 들어있고 부모님께서 만들어주신 소중한 이름이라 하니 그 뒤에 관심을 갖고 제대로 발음해줄려고 노력하더라구요... 글 항상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Anonymous said...

그나저나 이 MHIN이라 표기하는 우리 가문 사람들.. 이거이거 어쩌자는거야 ㅋㅋ.

Anonymous said...

ㅋㅋㅋ저희아버님왈..min은 미니멈의 약자기때문에 쓰지말라시는...ㅎㅎ언니저랑 원자가 같으시네요 전 미녀원으로 뜻을 해석해서....하면 이름뜻이....성스러운 미녀라는 ㅋㅋㅋㅋㅋ애들이 다들놀라요 ㅋㅋ기분나빠하더라구요 ㅋㅋㅋㅋ

Anonymous said...

그리하야 우리는 같은 가문이되 같은 가문이 아닌거군.

Oldman said...

민씨가문 아닌 사람은 여기 댓글달기도 좀 망설여 진다는... ^^

상황은 북미에서도 마찬가지죠. 한국식 이름을 가진 이상엔. 훗날 자녀 작명하실 땐 박유진=Eugene Park 식으로 국제적표기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도 고려해 보세요.

Wonjung Min 민원정 said...

이런.. 어쩌다보니 민씨들만 계속 댓글을 달았군요^* 성씨불문 댓글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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