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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November 30, 2015

이웃집 남자 225

일로 알게 된 어느 한국남이 이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메일 1. "민원정 선생님. .... 선생님을 만나서 즐거웠고 또 만났으면 합니다. 그리고 한국에는 언제 돌아오는지요. 잘 있어요." 잘 있어요? 말투가 이게 뭐지? 일로 만난 사람에게 잘 있어요? 그렇다고 동종업계에 있는 사람에게 시비를 걸기도 무엇해서 짧게 답했다. "한국에는 매년 2월 여름방학에 잠시 갑니다."

메일 2, 메일 3, 메일 4..... 거의 매일같이 일기 같은 메일이 왔다. 나는 답장도 하지 않는데 메일 속에서 '우리 사이'는 일방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이게 아니지 싶었다. 메일 6이던가 7이던가... 너무 바쁘게 달리고만 살았다 어쨌다 하는 내용이 있길래 답했다. "저도 바쁘게 사느라 칠레에 살면서 연애 한 번 못해봤는데 요즘 누가 생길 것 같아요."

예의를 차린답시고 어설프게 답을 한건 큰 실수였다. 좀더 확실하게 말했어야 했다. 그의 답. "...칠레에서 연애 한 번 못했다고 하니 정말 마음이 놓이네요. 듣던 중 반가운 소식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이유라도 있지만 나는 여건이 좋은 한국에서 어떻게 연애를 제대로 성사시키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첫째 그냥 바빴고, 그러다 보니 나는 가만히 있는데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선생님 반갑습니다." 뭐지 이거? 안되겠다 싶었다. "이런.. 제가 말씀을 잘못 드린 것 같네요. 칠레에서나 연애를 못해봤다는 소리지..  저는 결혼도 한 번 했었고 어쩌고 저쩌고... 칠레에서 만11년을 살면서 연애 한 번 못해본게 반가운 일인가요. 인간적으로 뭐가 모자란 거죠."

이 정도면 정리가 되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의 답. "선생님 메일에 제가 상상도 못한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충격이 너무 큽니다. 제게 정리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저도 모릅니다...." 정리? 아니 누구 맘대로 자기 맘을 정리한다는거지? 그냥 상대를 말자...

메일 10, 11, 12....... 일기 같은 메일이 계속 오고 '우리 사이'는 이제 마치 결혼이라도 해야 할 사이인양 메일 속에서 일방적으로 마구마구 '진행'되고 있었다. 이걸 스팸처리를 해야 하나 어째야 하나 하다 답을 했다. "선생님, 너무 혼자 이 생각 저 생각 사색을 많이 하시는건 아닌지요. 저는 선생님을 좋은 학자이자 동료라고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실수였다. 메일 15, 16, 17..... "제게 메일을 자주 보내시는 것은 그저 동료에게 보내는 메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제가 답장을 드리기도 뭣하고 해서 메일을 자주 받는 것이 좀 부담스럽습니다. 어서 좋은 분을 만나셔야 할텐데요."

이것도 아니었다. "답장을 바라고 메일을 보내는 것은 아니니 부담은 안가져도 됩니다. 그냥 나의 호의 표시 정도로 보아주길 바랍니다. 나는 민원정 선생님과 가까워지고 싶습니다."

나는 아니거든요. 이건 나에 대한 호감이라기보다 극도의 이기주의적 행동이 아닌가 싶었다. 그 많은 메일 속에서 그는 한번도 내게 내가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 궁금해 한 적도 없었다. 내가 싫다잖아! 게다가 나는 그에게서 남자로서의 매력을 느끼지도 못했다. 일에 치여 극도로 피곤한 어느날 그의 메일을 또 받고 나는 급기야 폭발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이제 선생님 메일을 그만 받았으면 합니다. 일기 같은 메일을 이렇게 자주 받아야 할 아무 이유가 없는 것 같습니다. 너무 부담스러워요."

더이상 그에게서 메일이 오지 않았다. 처음으로 내 의사를 존중해줬으니 이 얼마나 고마운지.... 찌질한 놈 안따라 붙는 것도 남자복이라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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