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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October 22, 2014

못난이의 도전 175

블로그를 시작한 지
어느새 3년이 지났다. 칠레에 잠깐 다니러 한 한국학생에게 이거저거 알려주던 중 그 학생이 깔깔 웃으며 "교수님, 이런 얘기 한번 글로 풀어보세요. 너무 재미있어요." 한 게 그 시작이었다. 칠레에 와서 맨땅에 좌충우돌 헤딩하며 겪은 (지금도 겪고 있는) 얘기를 적다 보니 기억의 꾸러미가 줄줄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는 웃으며 적을 수 있는 일, 아직도 적으려고 하면 울컥하는 일... 아.. 이제 내가 이건 극복을 했구나, 이건 아직 아니구나.. 어느새 블로그질이 내 심리치료제가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알량한 자존심에 더 지독한 고생담은 아직도 못(안) 쓰고 있다.) 더우기 우리말로 말하고 쓸 기회가 없는 내게, 집에 와도 달리 일상을 말할 이 없는 독거중년의 삶에, 이 블로그질이야 말로 최고의 삶의 활력소가 된 지 오래다. 이거야말로 혼자놀기의 진수였다. 처음엔 나중에 이걸 묶어 책으로 내겠다는 둥 나름 주제 넘는 야심까지 있었으나 지금은 말그대로  "즐기는 일"이 되었다.

처음 블로그를 시작했을 땐 굴비꾸러미처럼 떠오르는 기억을 주체하지 못해 일하고 공부하고 블로그까지 쓰느라 거의 한 달을 하루에 2-3시간 밖에 못잤다. 하루에도 글이 서너편씩 올라갔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너무나 즐거워 피곤한 줄을 몰랐다. 오며가며 지하철에서 글을 대충 구상하면 쓰는 건 몇 초도 안걸렸(린)다. 그러다 알게 된 '스케쥴' 기능. 그래서 지금은 늘 50편 정도의 글이 하루에 한 편씩 자동으로 올라가도록 예약되어 있다. (생각해보라. 미친 듯이 할 일이 많은데 언제 매일매일 블로그를 쓰겠는가....) 일하다 지칠 때, 갑자기 우리 말이 하고 싶을 때, 문득 누가 옆에 있다면 이런 수다를 떨지 않을까, 그럴 때마다 미친듯이 글을 쓴다. 그리고 한가지 더.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칠레에서 일어나는 일 하나하나, 칠레친구들과 나누는 대화 한 마디 한 마디가 더 내 눈과 귀에 쏙쏙 들어온다.

3년 전 맨 처음 쓴 포스트를 다시 읽다 문득 가슴이 철렁했다. 3년 전 글에는 "한국에 와서" 라고 썼는데 어느새부턴가 나는 "한국에 가서... 칠레에 와서"라고 쓰고 있었다. 아마도 나는 글로 외로움을 푼 덕에 "한국에 가서... 칠레에 와서"가 되도록 버틸 수 있었는지 모른다. 10년 칠레살이를 무사히 견뎌 준 나에게 박수를, 그리고 블로그에 쓸 거리를 만들어 준(주는) 나의 기억에, 그리고 이미 기억이 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 감사를.

못난이의 도전 176
못난이의 도전 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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