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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October 7, 2011

못난이의 도전 14

몇 년 전 한국의 어느 신문과 이메일 인터뷰를 하고 나서 밤새 펑펑 울었다.
"칠레에서강의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습니까?"라는 아주 간단한 질문이었는데, 처음에 칠레에 와서 이력서를 들고 여기저기 다니던 기억부터 사람들로부터 들었던 가슴을 후비는 것 같던 한마디 한마디, 그리고 내가 느꼈던 좌절과 무력감, 절망감, 실패한채 돌아가기 싫었지만 현실을 직시해야만 했던, 그래서 엉망으로 무너진 내 자존심, 모든 것이 너무 생생하게 기억이 나서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우습게도, 어쩌다 잘 먹을 기회가 생기면 있을 때 먹자는 심정으로 폭식을 해서 울퉁불퉁 디룩디룩 살이 찐 내 모습이 현실보다 더 내 자존심을 상하게 했던 일까지....

그런데 밤새도록 실컷, 아니 신나게 울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어쩌면 이렇게 울고 싶었는데 적당한 기회가 없다가 옳다구나 했나보다 하는 심정이었다. 그때는 가슴을 후벼파는 것 같았던 말 따위는 요새는 "웃기고 있네" 할 정도는 되었고, 나는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 산다고 생각하고 있고, 맘대로 잘 되지는 않지만 나름! 다이어트 한답시고 애를 쓸 정도의 여유도 생겼고,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건 나는 지금 여기 이렇게 살아있고 밤잠까지 설쳐가며 블로그질도 하고 있다는 거다.

나는 블로그에 열심히 논픽션을 올리고 있는데, 오빠가 "너 그것 좀 논픽션처럼 써봐" 했다고 하니 칠레에서 만난 (한국)친구 E가 "친오빠가요?" 한다. 하긴 나는 늘 어리광부리는 막내였고 가족들이 칠레에 와보지 못했으니 나 사는 얘기를 말로만 듣고 상상하긴 어렵겠다 싶다.

오래 연락없이 지내던 (한국)친구 I에게 그냥 "나 칠레에서 (시쳇말로) 삽질한 얘기야" 했더니 "너 삽질 아무나 하는거 아니다. 일단 삽을 준비해야 하고 삽질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해. 삽 아무리 줘도 절대 안하는 애들 있다. 그리고 나중에 후회해. 그거 한번 했어야 하는데 하고." 한다.

내가 삽을 들고 삽질할 마음을 먹고 칠레에 왔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나이 서른 여덟이 마흔 여덟 보다는 젊은 것 같아서, 그래서 마흔 여덟에 후회하기 싫어 칠레에 온 것은 맞는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건 나는 지금 여기 이렇게 살아있고 즐겁게 삽질을 하고 있다는 거다.

못난이의 도전 15
못난이의 도전 13

4 comments:

S양 said...

이 글 너무 좋아요 교수님!♥

Soonjoo Lee said...

"삽질"... 너무나도 함축적인
즐거운 "삽질"소리가 지구반대편까지 들려요~

Anonymous said...

@S양 & Soonjoo. ¡Gracias!

Anonymous said...

선생님 진짜 대단하세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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